해외여행을 갔다가 메뉴판을 읽지 못해 당황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음식 사진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처음 보는 외국어로 음식 이름만 적혀 있다면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예전에는 여행 책자를 뒤적이거나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메뉴판을 비추거나 번역 앱을 실행하면 뜻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해외 쇼핑몰의 상품 설명을 읽거나 외국어 이메일에 답장하는 일도 훨씬 쉬워졌다. 이렇게 편리한 번역기가 생기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번역을 직업으로 삼아 온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AI 번역 기술이 발전하면서 간단한 문서를 직접 번역하는 일은 줄어들 수 있지만,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완성하는 번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번역기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준비할 때 호텔에 문의할 내용을 영어로 작성하거나, 해외 직구를 하면서 배송 안내문을 읽을 때도 번역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외국어로 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번역기가 아무리 좋아져도 가끔 이상한 문장이 나오곤 한다. 말은 한국어인데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거나, 문장은 자연스러운데 원래 의미와 다른 경우도 있다.
이런 번역을 볼 때면 사람이 직접 번역하는 일과 기계가 문장을 바꾸는 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번역기 없이 외국어를 이해하던 시절, 번역가는 어떤 일을 했을까?
인터넷 번역기가 없던 시절에는 외국어 문서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외국 회사에서 보낸 계약서나 제품 설명서를 읽으려면 해당 언어를 아는 직원이 필요했다. 전문적인 내용이 담긴 문서라면 번역회사나 전문 번역가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었다.
번역가는 원문을 읽고 의미를 파악한 뒤 다른 언어로 문장을 다시 작성했다. 단순히 단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내용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다듬어야 했다.
예를 들어 영어로 작성된 회사의 제품 설명서를 한국어로 옮긴다고 생각해 보자. 외국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번역하면 한국 소비자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럴 때 번역가는 원래 의미를 유지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선택해야 한다. 제품의 사용 방법이나 주의사항처럼 정확성이 중요한 부분에서는 특히 세심한 확인이 필요했다.
우리가 외국 영화를 볼 때 화면 아래에 등장하는 자막도 번역가의 작업 결과다.
영화 속 인물이 농담을 하거나 화를 내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영어 대사를 한국어로 단순히 옮기는 것만으로는 그 장면의 분위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상황에 어울리는 말투를 선택해야 하고, 관객이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도록 문장의 길이도 조절해야 한다.
특히 영화 속에는 특정 국가의 문화나 유행어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런 대사는 원래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한국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옮겨야 한다.
번역가는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인 동시에, 해당 내용을 다른 문화권의 사람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물론 기계번역이 등장하기 전에도 사전과 전문용어집,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도구는 번역가의 작업을 도왔다.
그러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온라인 번역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외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도 문장을 복사해 번역기에 넣으면 대략적인 뜻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초기의 번역 서비스는 지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어색한 문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 때문에 번역 결과를 그대로 사용하기보다 참고용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번역기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2016년 구글 번역부터 2022년 ChatGPT까지,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6년은 온라인 번역 기술에서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해다.
구글은 그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번역 기술을 구글 번역 서비스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문장 전체의 흐름을 고려해 자연스러운 번역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예전 번역기는 단어를 기계적으로 옮긴 듯한 문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번역 방식은 문맥을 더 폭넓게 고려하면서 번역 품질을 개선했다.
이 변화는 일반 사용자에게도 의미가 컸다. 해외 사이트의 설명문이나 간단한 이메일을 읽을 때 번역 결과를 이전보다 편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딥엘(DeepL)이라는 번역 서비스가 등장했다. 딥엘 역시 인공지능을 활용한 번역 기술로 알려졌고, 이후 여러 언어를 지원하면서 이용자를 늘려갔다.
사람들은 번역 서비스를 비교하며 자신에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결과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22년 11월, ChatGPT가 공개되면서 번역기를 사용하는 방식에도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기존 번역기에서는 번역할 문장을 입력한 뒤 결과를 받아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대화형 AI에는 번역과 함께 원하는 문체나 분위기를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외 호텔에 보낼 이메일을 작성한다고 해 보자.
단순히 한국어 문장을 영어로 바꾸는 대신, "호텔 직원에게 보내는 정중하고 자연스러운 영어 이메일로 바꿔줘"라고 요청할 수 있다.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면 조금 더 편안한 표현을 요청할 수도 있다. 외국어 문장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에게 어떤 느낌으로 전달할지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AI가 만들어 준 문장을 무조건 믿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해외 호텔에 "예약을 취소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내용을 전달하려고 했는데, 번역 과정에서 부정 표현이 빠져 "예약을 취소해 주세요"라는 문장이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아주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요청이 된다.
친구에게 보내는 가벼운 메시지라면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계약서나 의료 관련 안내문, 중요한 업무 문서에서는 작은 번역 오류가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번역기가 문장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과, 그 문장의 내용이 정확하다는 사실은 서로 다르다.
또 다른 문제는 문화적 차이다.
한국어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 영어로 옮겨졌을 때는 어색할 수 있고, 반대로 외국에서 유행하는 농담을 한국어로 그대로 옮기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광고 문구나 영화 대사처럼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문장에서는 이런 차이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AI 번역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번역 결과가 정확한지,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일의 의미도 커지고 있다.
AI가 먼저 번역한 문장, 이제 번역가는 무엇을 할까?
번역가의 업무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번역을 진행하는 순서는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번역가가 처음부터 문장을 작성하는 일이 많았다면, 지금은 AI가 만든 번역 초안을 사람이 검토하고 수정하는 방식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외국 회사의 제품 설명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먼저 AI 번역기로 전체 문서의 초안을 만든다. 이후 전문 번역가가 원문과 번역문을 비교하면서 의미가 잘못 전달된 부분을 확인한다.
제품 이름이나 전문용어가 일관되게 사용되었는지 살피고, 한국어로 읽었을 때 어색한 문장도 수정한다. 중요한 주의사항이 빠지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기계가 번역한 문장을 사람이 검토하고 다듬는 작업을 업계에서는 '포스트에디팅'이라고 부른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AI가 만든 번역 초안을 사람이 확인하고 고치는 작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번역가는 모두 이런 일만 하게 될까?
그렇지는 않다. 번역하는 문서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작업은 다르다.
여행 안내문이나 일반적인 상품 설명처럼 비교적 단순한 문서는 AI 번역만으로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 대사, 광고 문구처럼 표현의 느낌이 중요한 글은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외국 영화에서 주인공이 친구를 놀리기 위해 농담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AI가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옮기더라도 한국 관객이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이때는 상황에 어울리는 한국어 표현을 선택해야 한다. 영화의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성격을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문장이라도 등장인물의 성격과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다른 표현이 어울릴 수 있다.
번역가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어떤 문장이 실제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AI도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사람이 잘하는 업무가 앞으로도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유지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모든 번역가가 AI 덕분에 업무가 쉬워졌다고 느끼는 것도 아닐 것이다. 고객이 직접 번역기를 이용하면서 일부 단순 번역 의뢰가 줄어들 수 있고, 번역 작업에 대한 보수나 요구사항도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AI를 활용해 초안을 빠르게 만든 뒤 더 많은 시간을 검수에 사용하는 번역가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AI의 영향은 번역 분야와 개인이 맡는 업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앞으로 번역가에게는 외국어 능력뿐 아니라 해당 분야를 이해하는 지식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 문서를 번역한다면 의료 관련 표현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고, 법률 문서라면 계약 내용의 의미를 신중하게 확인해야 한다.
AI 번역 도구를 능숙하게 활용하면서도 결과를 그대로 믿지 않고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번역이라는 직업에서 사람의 역할은 단순히 단어를 바꾸는 일보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번역기를 켜는 일과 좋은 번역을 만드는 일
이제는 해외여행 중 처음 보는 외국어를 만나도 예전만큼 당황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꺼내 번역 앱을 실행하면 대략적인 뜻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몰라도 다른 나라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편리한 변화다.
하지만 번역기를 사용하다 보면 여전히 의미를 알기 어려운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번역된 문장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원문의 뜻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럴 때 좋은 번역은 단순히 문장을 빠르게 바꾸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번역가의 일이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AI가 발전하면서 단순한 번역 작업은 더 빠르고 편리해졌고, 사람이 맡는 업무도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가 번역을 이용하는 이유는 외국어를 한국어로 바꾸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목적이 계속되는 한, 좋은 번역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도 중요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Google 공식 블로그, Found in translation: More accurate, fluent sentences in Google Translate, 2016년 11월 15일
https://blog.google/products-and-platforms/products/translate/found-translation-more-accurate-fluent-sentences-google-translate/
DeepL, About Us — 2017년 서비스 역사
https://www.deepl.com/ko/about-us
OpenAI, Introducing ChatGPT, 2022년 11월 30일
https://openai.com/index/chatgpt/
ISO, ISO 18587:2017 — 기계번역 결과의 후편집 관련 국제표준
https://www.iso.org/standard/62970.html